Leimert Park는 어떤 곳인가요?
저는 Leimert Park가 단순히 사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라는 걸 경험하며 자랐습니다. 이곳은 LA 흑인 커뮤니티의 문화적 수도(Cultural Capital of Black Los Angeles)와 같은 곳입니다. 1992년 폭동 이후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늘 미국에서 가장 예술적인 커뮤니티 중 하나였습니다. Leimert Park 출신이라는 사실은 저에게 늘 창의적인 순간을 선사해 줬어요. 창밖에는 개성, 예술, 문화가 있었고 무엇보다 흑인 문화(Black Culture)를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었죠.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할머니는 'Brown’s Day Care'라는 사업을 운영하셨어요. 많은 동네 아이들이 할머니 집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항상 그 아이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는데, 웃긴 건 지금도 그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lol.
어린 시절에는 굉장히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랐어요. 엄마와 할머니는 제가 어떤 예술 매체든 자유롭게 접할 수 있도록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어요. 저는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들을 수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도 보고 싶은 건 무엇이든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자유로움이 제가 결국 사랑하게 된 스케이트보딩, 음악, 영화, 예술을 더 깊게 파고들 수 있게 해줬습니다. 돌아보면 매일 많은 예술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는 늘 무언가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아이였고 자연스럽게 창작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웠죠. 친구들은 모두 같은 블록(Block)에 살았고 말 그대로 제 '이웃들 (Neighbors)'였습니다.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우리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음악을 들었고, 밤에는 영화를 보거나 비디오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케이트보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Terry라는 동네 형을 통해 스케이트보드를 처음 접했어요. Terry는 정말 스타일이 좋았습니다. 헐렁한 코듀로이 쇼츠, 롱 삭스, 올드스쿨 Mark Gonzales Vision 보드, Chicago Bulls 스냅백, Bones 해골 티셔츠, JanSport 백팩까지. 그게 진짜 쿨한 것이라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죠. Terry는 항상 저희 집 앞 금이 간 보도를 앞바퀴로 멋지게 놀리 범프(Nollie Bump)하며 지나갔어요. 정말 멋있었어요. lol. 저는 할머니에게 “스케이트보드 갖고 싶어요!”라고 졸랐고 곧 Toys-R-Us에서 ‘Nash Sawblade’라는 보드를 받았습니다. 완전 가짜 보드였죠. Lmao. 당시에는 그걸 몰랐고 그저 보드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어요.
Terry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무릎으로 보드를 밀면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Terry가 진짜 스케이터가 되고 싶다면 제대로 된 보드가 필요하다고 말해줬어요. 당시에는 돈이 없어서 보드 대신 'Transworld'의 <Transmission 7> VHS를 샀습니다. 전 세계 스케이터들의 클립이 담긴 비디오였죠. 스케이터들도, 음악도 모두 완벽했죠. 이후 돈을 모아 처음으로 제대로 된 보드를 샀습니다. Brandon Turner의 프로 모델인 Shorty’s Skateboard였고 돼지처럼 표현된 경찰들을 Brandon Turner가 때리는 그래픽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Neighbors Skate Shop을 시작하게 된 히스토리가 궁금해요.
2019년에 시작했습니다! “나를 지지해 주지 않는 브랜드들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반항적인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나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갈망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Harun Coffee의 팝업에 갔다가 주변에 비어 있는 공간들을 보게 됐습니다. Harun Coffee를 운영하는 Chace Infinite에게 “이곳에 내 공간도 하나 있으면 정말 좋겠다”라고 말했죠. 당시에는 브랜드 이름도, 사업 계획서도 없었지만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와 바로 사업 계획서를 만들면서 이름을 고민하던 중 가장 중요하게 떠올랐던 건 친구들과 커뮤니티였습니다. 제 친구들은 모두 제 이웃들이기도 했고 그 순간 'Neighbors' 단어가 떠올랐죠. Chace는 저를 중개인과 연결해 줬고 그렇게 Leimert Park에서 스케이트숍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로고가 인상적인데,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로고를 만들 때 제 머릿속에는 아프리카 문화와 로스앤젤레스 문화밖에 없었어요. 유산과 역사를 담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봤을 때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를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Neighbors'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강렬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글자 안에는 다리(Bridge)의 이미지를 더해 세대 간의 간극을 연결한다는 의미를 담고자 했습니다.
커뮤니티를 위해 진행했던 이벤트나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순간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2022년에 Nike와 함께 진행했던 블록 파티입니다. Leimert Park에서 도로를 막고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하면, 정말 큰 성공이었다고 생각해요. Degnan 길 한가운데에 스케이트 파크를 만들고 음식과 음료를 무료로 나눠줬어요. 그래피티 월도 설치해 아이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무료 스프레이 페인트도 제공했죠. DJ로는 Alchemist가 함께 해줬습니다. 정말 엄청난 일이었죠. 수많은 사람이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왔어요. 그날 현장의 분위기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Juneteenth는 Neighbors Skate Shop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기념하는 날이면서 동시에 Leimert Park에서도 가장 의미 있는 날 중 하나죠. 우리 커뮤니티 안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서 매년 함께 Juneteenth를 준비해요. Neighbors Skate Shop에게는 Leimert Park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Neighbors Skate Shop은 여러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했어요.
Common이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숍에 들렀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는 정말 편안하고 겸손한 사람이에요. 숍 앞에는 스케이트 램프가 하나 있는데, 그는 그 위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춤을 추고 촬영 내내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지금까지 스티커 바밍한 곳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인가요?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과테말라, 뉴욕, 일본 등 전 세계 곳곳에 스티커가 붙어 있어요. 저는 Neighbors가 쿨하고 안티한 분위기 안에 존재하길 바랐습니다. 그래피티 라이터들이나 스트리트 컬처와 관련된 사람들 사이에서 스티커가 돌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LA의 모든 정지 사인 표지판에 스티커를 붙이려고 했어요. 우리를 멈출 수 없다는 의미로요. lol
어릴 적 친구 David와 저는 메트로 바이크를 훔쳐서 스티커로 완전히 뒤덮은 적도 있어요. 매일 밤 그걸 타고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스티커를 붙이고 그 모습을 온라인에 올렸죠. 다른 친구들이 그걸 알게 되자 함께하고 싶어 했고 어느 순간 우리 사이에서 경쟁하는 게임이 됐죠. 얼마나 높이 붙일 수 있는지,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는지 같은 식으로요. 심지어 16피트 높이의 거리 표지판에도 스티커를 붙일 수 있도록 슬랩 스틱까지 만들었습니다. 정말 한계가 없었죠.
가장 미친 기억 중 하나는 제 친구 Macks와 Kazi가 하와이에서 정글 속 폭포로 하이킹을 가는 중에 페이스타임을 걸어왔죠. 다이빙 금지 표지판에 Neighbors 스티커 두 장이 붙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말도 안 되게 신기하면서도 너무 멋있었습니다. lol 그리고 경찰차에 스티커를 붙였다가 잠깐 체포된 적도 있습니다. lol 😜

Virgil Abloh와의 인연에는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나요?
Virgil은 제가 만난 사람 중 가장 감각 있고 겸손한 크리에이터 중 한 명으로 기억해요. 그는 직접 저희 온라인 숍에서 티셔츠를 구매했어요. 함께 숍을 운영하는 Cleon과 주문을 확인하다가 익숙한 풀네임과 주소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는 그 주문 정보를 스티커로 출력해 Dymo 주문 프린터에 붙여둘 정도로 신났죠.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그에게 연락했고, 이후로는 시간대와 상관없이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안부를 묻기도 하고 조언 해주면서 우리가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가도록 격려해 줬습니다.
그가 저희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올렸을 때 저희 인스타그램 계정은 정말 폭발했습니다. lol. 이후 이탈리아 매거진 화보에서도 저희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몇 차례 더 올라왔죠. Virgil 같은 사람이 우리의 아이디어를 믿고 지지해 줬다는 것은 정말 큰 영광입니다. Long live Virgil.

Denim Tears와의 <African Diaspora Skate Shop>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Chace Infinite가 Tremaine Emory를 소개해 줬습니다. Virgil이 세상을 떠난 이후 Chace는 Tremaine이 Virgil의 의지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먼저 걸어온 사람으로서 다음 세대가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고 생각해요. Tremaine 역시 저희를 믿어줬고 함께 작업하고 싶어 했습니다. Virgil 하고자 했던 일을 이어가는 느낌이기도 했죠.
2023년, 그가 Suprem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저에게 Black Diaspora를 주제로 한 컬렉션을 함께 만들고 싶다고 했죠. 저는 흑인 교회에서 촬영하는 콘셉트를 떠올렸습니다. 성모 마리아와 블랙 예수가 그려진 스케이트보드와 함께 촬영하는 아이디어였어요. 모든 크리에이티브 한 과정은 자연스럽게 진행됐습니다.

Neighbors Skate Shop에게 서로 다른 세대를 연결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요? 그리고 그런 믿음은 어떤 경험에서 비롯되었나요?
Leimert Park에서 자란 경험이 그런 믿음을 만들어줬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멈추면 얼마나 많은 지식과 이야기가 사라질 수 있는지 직접 봐왔어요. 동시에 윗세대가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나누고 다음 세대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순간들은 지속적인 힘을 만들어주고 우리가 각자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줘요.
Neighbors Skate Shop은 다음 세대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나요?
Neighbors Skate Shop을 단순한 스케이트숍 이상으로 기억해 줬으면 합니다. 누구든 환영받는다고 느끼는 공간이면서 친구를 만들거나 크리에이티브한 발견을 하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훗날 누군가 “거기서 스케이트를 배웠어” 혹은 “거기서 내 커뮤니티를 찾았어”라고 말해준다면 그걸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